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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그 무덥던 어느 날


하루 여섯 마리 개를 잡으면서
어머니인 대지의 여신 가슴에
상처를 낼 수 없어 사냥만 하며
산다는 인디언을 생각하면서
비굴하게 생활을 연명하면서
개는 여름에 겨울옷을 입고 헉헉대면서
겨울을 산다고 생각하면서
지금 이 생활이 개의 여름살이가 될 수 있을까
의심하면서

하루 여섯 마리 개를 잡으면서
잔인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잔인함을 주지 않는 식물을 죽이는 것보다
잔인함을 주는 이 작업이 얼마나
잔인하지 않은 일인가라는 역설을 떠올리면서
산골로 들어와 개기르기와 잡아주기가
생업이 된 가계를 생각하면서
순간적으로 칼끝을 돌려 거머잡을 수도 있다는
충동을 느끼면서

하루 여섯 마리 개를 잡으면서
여섯번 개를 목매달면서
주인님 장난이 지나치군요
이제 놓아주시죠라고 말하듯
꼬리를 흔들며 죽어가는 개를 들여다보면서
다 죽었나 톡톡 눈동자를 찔러보면서
여섯번 지푸라기 불에 개를 그슬리면서
거의 같은 포즈로 죽은 개를 뒤적이면서
여섯번 배때기를 가르면서
내장을 내리훑으면서

하루 여섯 마리 개를 잡으면서
인생의 비린 맛 신맛을 알아야
참 사람살이를 알 수 있다는 말놀이를 떠올리면서
이 정도 비린내 나는 삶이라면
한번 살아볼 만하지 않는가 호언하면서
한 달에 개 두 마리씩 먹지 않고는
화물기차에서 시멘트 하역작업을 할 수 없다는
노무자들의 말을 들으면서
개 쓸개 여섯개를 지푸라기끈으로
포도나무 섶에 종자주머니처럼 매달면서

하루 여섯 마리 개를 죽이면서
하루 여섯번 나를 죽이면서




쥐가 갉아먹은 비누로 머리를 감으며


쥐가 갉아먹은 비누로 머리를 감는 아침
쥐의 도회적 食性이 실업자인 나를 갉아댄다.
그래 머리나 감아라. 밝음을 지향하는 너의 삶
가식으로 더럽혀진 네 머리통 바깥이나 씻어라.
나의 길은 어둠 속. 가끔 생활고 해결을 위해
빛의 공간으로 외도도 하지만, 어둠이 나의 길
나의 正道.
솔직히 나는, 내장이 나의 살아가는 길이야.
내장의 평화가 나의 희망이고
그 어두운 內臟길을 나는 맑게 닦고 싶었던 게지,
향기로운 비누로. 너의 곤궁한 정신이 없는,
내장을 위해 쫓기고 위협을 무릅쓰지 않아
비장미 나지 않는, 작금의 네 詩 나부랭이로는
어림없지.
더 진지하게, 生을 비누에게 물어보라고.
쥐가 이빨도 아닌 이빨 자국으로 까칠까칠
머리를 감겨주는 아침
쥐 禪師가 비누經으로 나를 깨우치는 아침




송홧가루 날리는, 아버지 사진 한 장


   선녀가 하늘나라로 데리고 올라간 자식들
   나무꾼 아버지 그리워
   햇살 편지
   저리 붉게 꽃피는 봄

   내게도 기적처럼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네 초등학교 다니는 누이 둘과 어린 내가 깔깔대며 산길을 오르고 있네 대나무 바지랑대 어깨에 걸쳐 맨 아버지와 함지박 머리에 인 어머니가 뒤따라오시며 길이 갈라질 때마다 손사래와 고갯짓으로 길을 이끌어주시네 아랫녘 들판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속으로 동네 초가집들이 아른아른 멀어지네 산등성이를 다 오르자 불꽃처럼 푸른 강물처럼 푸른 소나무밭이 펼쳐지네 어머니는 함지박을 내려놓고 양은 이남박을 꺼내 누이들에게 주네 누이들은 햇살 퉁기는 이남박을 머리 높이께까지 들고 작은 소나무 가지를 톡톡 터네 노란 송홧가루가 폴폴 나네 아버지 어머니는 더 커다란 소나무 가지 휘어놓고 힘을 합해 송홧가루를 터시네 나는 아직 덜 성숙해 꽃이 피지 않은 송화 꽃송이를 따먹네 살이 통통 오른, 대추씨만한 송화에서 나는 소나무 향내, 달착지근한 즙에. 잠시 눈을 감고. 아버지가 송홧가루 털러 가기로 점지한 날은 부지런한 봄바람도 낮잠을 자 송홧가루 날리지 않는다고 어머니는 고마워 신바람 나시네 우뚝, 커다란 소나무에 송화가 만발하여, 태양이 꽃들을 호명하듯 아버지가 가족을 불러 모으시네 어머니와 누이들이 준비해 간 이불 홑청으로 소나무를 에워싸고 아버지는 바지랑대로 소나무 가지를 터억-터억-, 치시네 이불 홑청에 내리는, 노란 안개, 송홧가루, 송홧가루. 송홧가루 쏟아지는 재미에 몰두하다보면 아버지 어머니 머리에도 누이들 단발머리에도 내 상고머리에도 온통 노란 물감이 드네 그 모습이 우스워 서로를 보고 웃는 웃음소리가 소나무밭을 송홧가루처럼 환하게 들어올리네




서울역 그 식당


그리움이 나를 끌고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그대가 일하는 전부를 보려고 구석에 앉았을 때
어디론가 떠나가는 기적소리 들려오고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 채 푸른 호수를 끌어
정수기에 물 담는 데 열중인 그대
그대 그림자가 지나간 땅마저 사랑한다고
술 취한 고백을 하던 그날 밤처럼
그냥 웃으면서 밥을 놓고 분주히 뒤돌아서는 그대
아침, 뒤주에서 쌀 한바가지 퍼 나오시던
어머니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습니다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고 나옵니다




유덕아범


그는 씨갑시장수였다

장날마다 씨갑시 옹기종기 거닐고
쭈그려 앉아

들판의
여름을 봄에 팔고
가을을 여름에 팔던
씨갑시장수 유덕아범
장터 후미진 곳에 앉아서도
한 고을 들판을 훤히 외고
자신이 판 씨앗 튼실한 곡식 되어
장에 나는 것 보고 환히 웃던

그가 떠나갔다
시내버스 생기고 장날이 썰렁해지자
몰골이 꾀죄죄하던 유덕아범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서
담장을 보았다
집 안과 밖의 경계인 담장에
화분이 있고
꽃의 전생과 내생 사이에 국화가 피었다

저 꽃은 왜 흙의 공중섬에 피어 있을까

해안가 철책에 초병의 귀로 매달린 돌처럼
도둑의 침입을 경보하기 위한 장치인가
내 것과 내 것 아님의 경계를 나눈 자가
행인들에게 시위하는 완곡한 깃발인가
집의 안과 밖이 꽃의 향기를 흠향하려
건배하는 순간인가

눈물이 메말라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
꽃철책이 시들고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리라




함민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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