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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아래, 하루


   a l l  ㄱ 41  ㄴ 3  ㄷ 1  ㄹ 1  ㅁ 7  ㅂ 14  ㅅ 7  ㅇ 49  ㅈ 15  ㅊ 9  ㅋ 0  ㅌ 0  ㅍ 1  ㅎ 12  & 1 
 

떴다, 비행기

김선우



강릉행 비행기를 처음 타던 날
音이 되고 싶은 내 날개
육천 피트 상공을 튀어오르네
구름이 스스로에게 실려가듯이
이대로 떨어지면 땅에 닿기 전
살은 수증기로 그저 풀어지고
잘 마른 뼈만 대관령
희망이 웃자라던 은사시숲에 떨궜으면
정강이 가슴뼈 두개골이 차례차례
푸르디푸른 화음으로 나부껴
떴다 비행기, 콜타르 같은
인간의 마을은 아득한데
아, 허공은 따뜻하구나
시속 팔백, 구백 킬로미터로
시든 어머니께 꽃 따 드리러 가는 길
스러지며 타닥, 초록 불씨를 지피는
산벚꽃나무 봄산에 만발하였네





 

하동 포구에서 굽이굽이

고재종



구례에서 하동까지 산첩첩 물첩첩으로 팔십여 리. 아침골안개 물안개 수작이 끝나면, 산은 산벚꽃 참진달래 홍도화를 우르르 터뜨려선, 그것들의 새보얗고 붉디붉은 무작정 서러운 빛깔이거나, 강은 도요새 댕기물떼새 흰고니 떼를 속속 날려선, 그것들의 신신하고 유유한 하릴없이 아득한 날개짓이거나로, 시방 내겐 요렇듯이 가슴 벅차고 치미게끔 한통속이다.

강 아래 모람모람 들어앉은 마산면 피아골 화개면 집들, 산 위 구중심처의 화엄사거나 쌍계사 절들을 보면, 어디가 이승이고 어디가 피안인지, 나는 다만 봄볕 융융한 그 사이에서 저기 달래 냉이 자운영을 캐는 산사람들 본다. 저기 은어 쏘가리 버들치를 건지는 강사람들 본다. 저들 저렇듯이 산길 물길로 흐르며 마음엔 무슨 꽃을 피우는지, 어떻게 새는 날리는지.

나는 다시 꽃구름에 홀리고 새목청에 자지러져선, 우두망찰, 먼 곳을 보며 눈시울 함뿍 적신다. 그러다 또 애기쑥국에 재첩회 한 접시로 서럽도록 맑아져선, 저 산 저렇듯이 사람들의 그리움으로 푸르러지고, 저 강 또한 사람들의 슬픔으로 꼭 그렇게 불었던 것을 내 아둔폐기로 새삼 눈치라도 채는가 마는가. 시방은 눈감아도 저기 있고 눈떠도 여기 있는 한 세상 굽이굽이다.

지리산이여, 그러면 우리가 네 노루막이 위 청천에 닿고, 섬진강이여, 우리가 네 자락 끝의 창해에 이르는 길을 찾기는 찾겠는가. 가슴속의 창날 우뚝우뚝한 것으로 스스로를 찔러 무화과 속꽃 한 송이쯤 피울지라도, 가슴속의 우북우북한 것으로 깃을 쳐 죽을 때 꼭 한 번 눈뜨고 죽는다는 눈먼새 한 마리쯤 날릴지라도, 생의 애면글면한 이 길, 누구라서 그예는 일렁거리지 않겠는가,



 

꽃밭에 길을 묻다

김선우


  
1

  어젯밤 나의 수술대에는 한 아이가 올라왔습니다. 작고 노
란 알약 같은 아이의 얼굴. 신경들이 싸늘한 슬픔으로 명랑
해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천천히 수술용 장갑을 끼었지요
  

2

  아이가 내 수술실을 노크한 건 지난 봄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태백에 가는 길이었지요. 태백산 지천으로 만발
한 철쭉꽃. 수혈 받으러 오라는 꽃들의 전갈을 받고 더러워
진 내 피를 버리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식당칸 열차에서 바
람이 허공에 절벽을 만드는 걸 무료하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사북을 지날 때였어요. 버려진 폐광이 전족을 한 여자처럼
뒤뚱거리며 골짜기 사이로 곤두박질치는 길 끝에 회백색 슬
레이트 지붕이 보였지요. 산벚꽃나무였던가요. 꽃그림자 소
술한 평상 위에서 한 소녀가 기찻길을 바라보고 있었지요
오도카니 모은 무릎, 기차를 바라보며 소녀는 긴 머리채를
하염없이 빗질하고 있었지요
  그 때 그 태백행, 노랗고 질긴 점액이 접시 끝에서 늙은 꽃
술처럼 떨어져내렸지요. 외로움과 공포를 한꺼번에 알아버
린 어린 짐승의 충혈된 눈이 천제단 붉은 철쭉 꽃잎 속에 웅
크리고 있었습니다. 오지 마, 오지 마, 꽃대궁을 분지르며 나
는 소리쳤지요.
  

3

  그 아일 다시 만난 건 올여름입니다.
  지독한 폭우의 끝, 여위고 남루한 것들이 먼저 휩쓸려 주
저앉고 유복한 성곽들은 더욱 당당해지더군요. 희망이라는
病을 버릴 수 없었으므로 가난한 아버지들의 삽질 소리는 맺
지 못하고 범람한 하천에 깨진 유리구슬로 떠내려왔지요. 그
여름의 끝에서 그앨 본 겁니다. 널어놓은 이불홑청 붉은 목
단 꽃무늬가 작열하던 담벼락 끝, 깨진 벽돌을 움켜쥔 아이
가 금 간 담장 밑에 오도카니 서 있었어요. 녹슨 자전거바퀴
와 빈 라면상자가 길 잃은 염소처럼 엎드려 있었구요. 햇빛
이 바큇살에 걸려 챙강거리며 울었지만 아이는 아무것도 듣
지 못한 듯합니다. 행인 몇이 병나발을 불며 지나갔지만 아
이는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어요. 깨진 벽돌조각을 꼭 움
켜쥐고 하염없이 서 있을 뿐이었지요

  그때 그 사내아이 일렁이는 눈그림자, 사북을 지나며 본
소녀의 얼굴임을 나는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얘야,
해바라기를 보러 오지 않을래? 나는 아이에게 가만히 손을
내밀었지요. 원한다면 내 수술실에 와도 좋아.
  

4

  해바라기/긴 꽃대궁을/타고 오르는 /챗빛 쥐
  씨앗을 파먹힌/해바라기/슬픈/음부로
  흘러드는/안개/젖빛 따뜻한/달의 피

  안개 짙은 달밤, 씨앗을 파먹힌 해바라기를 통과해 어젯밤
그 아이가 내게 왔습니다. 아이의 긴 머리칼에서 달이 흘린
피냄새가 났습니다.
  나는 깨진 벽돌을 움켜쥔 아이를 안아 수술대에 눕혔지요.
나의 늑골 위에서, 고산식물처럼 고개를 외로 틀고 아이는
곧 잠들었습니다. 꽃그늘 일렁이는 아이의 가슴팍, 나는 조
심스레 메스를 그었지요.
  
5

  나의 아이는 무사합니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수술이었어
요. 산벚꽃잎을 열자 철쭉이, 철쭉 꽃술을 열자 붉은 목단이
뭉클거리며 피어올랐지요. 젖빛 따듯한 달의 피가 아이의 심
장으로 흐르고, 나는 해바라기를 꺾어 잔인한 물살 위에 얹
어주었습니다. 노랗게 빛나는 총신이 물살을 끌어당기며 폭
죽처럼 씨앗을 쏘아올리더군요. 창밖엔 능소화, 炎天을 능멸
하며 핀다는 그 꽃이 제 꽃대궁 속에 두레박을 내려 길을 묻
고 있었습니다. 印章처럼 붉은 달이 태양의 뒤편에서 서늘하
고 뜨겁게 차오르는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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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감사히. 잘못 옮긴 문장은 알려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