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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아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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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천정(酌川亭)에 벚꽃 피고

강세화


  
마음이 밝은 날은 어둠도 그윽하고
꽃피는 숨결이 떨리듯이 들려온다
달빛과 어울린 밤을 말로 어이 할 것인가.

가상한 마음으로 노래도 부르면서
꽃피는 소리에 시선을 보내면서
살처럼 하얀 배경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꽃인지 달빛인지 이렇게 환한 밤에
첫담배 피웠을 때 똑 그런 기분으로
빠르게 번지는 소문을 따라가며 듣는다.



 

벚꽃 아래를 지나며

남유정
  

  
겨우내 아팠던 나무
신열이 올라 온 몸에 돋은
틈이란 틈은 모두 찾아 핀
저 열꽃을 보아!

스스로도 어쩌지 못해
흰 꽃잎만 날리는 나무 아래서
나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꿈결처럼 지나가는 짧은 사랑같은 거
그렇게 빨리 가버리는
봄의 뒷모습
혹은 한 생(生)을 미리 보는 거



 

직지사(直指寺) 벚꽃 그늘에서

김은숙



사무치기도 하여
캄캄한 그리움이기도 하여
내 기다림은 이렇게
글썽이는 하얀 소복(素服)이다

무너지듯 마음 벗으며
맨발로 먼길 나서는 흰 이마의 사람아
봄하늘 너울대는 시름도 맑게 헹구고서
치마폭 환히 펼쳐 하얗게 대지 뒤덮은
해탈 같은 이 울음들 꼭꼭 밟고
이제 가라

닿지 않는 오랜 기다림 무심히 내려놓고
맨발의 소복으로 묵상하는 봄
마음 가리키는 비밀의 흰 손 환하게 일어나
땅 속 천불천탑(千佛千塔)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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